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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 개통 후 삼지원 항구 여객선 사라져’ - 진도 벽파항 연결하는 육지의 관문…서해해경 검문소 설치 안전 제고 주력-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의 좁은 바다를 명랑해협이라 하고 이곳 사람들은 ‘울돌목’이라 부른다. 물살이 소용돌이 치고 그 흐름소리가 마치 물이 우는 듯 하기 때문이다. 1597년 이순신장군은 이 거친 해협의 물살을 이용해 12척의 병선으로 무려 130여척의 왜적 함선을 이곳에서 물리쳤다.
울돌목에는 지난 1984년 길이 484m의 2차선 다리가 건설됐고, 이후 2005년 말에는 쌍둥이 다리가 놓였다. 이렇게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사이에 진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진도는 연륙됐다.
다리가 놓이기 전 진도와 육지는 철부선에 의해 연결됐고, 진도로 들어가는 출입객 대부분은 진도대교의 동남쪽에 위치한 해남군 황산면 삼지원 항구를 이용했다. 진도대교 아래가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이지만 이곳 명량해협은 폭이 290여m 불과하고 수심 또한 20여m에 지나지 않아 남서해 쪽과 남동해 쪽의 바닷물이 드나들어 항상 물살이 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진도대교의 아래쪽 해남 우수영(명랑)과 진도 녹진항에는 90여 년 전 나룻배가 종종 운항됐을 뿐 두 지역을 연결하는 배는 그 이후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우수영 토박이인 정애 할머니(86·문내면 선두리)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명랑과 녹진 간에 나룻배가 다녔다고 해요. 울돌목의 물살이 워낙 거세서 물때를 봐가며 배가 건너다녔다고 합니다.”
현재 우수영 항에는 제주를 오가는 쾌속선이 하루 1회 왕복 운항할 뿐 다른 항로는 개설돼 있지 않다.
한때 진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황산면 삼지원항은 다리 개통 후에는 한적한 어민선착장으로 바뀌었고 항구 주변의 인가마저도 모두 사라졌다.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삼지원항 부근에서 살았다는 윤영삼씨(75·황산면 옥동리 옥연마을)는 “예전에 항구 바로 근처에 둥근 형태의 작은 산이 하나 있었고 그 산 밑에서 3~4가구가 살았는데 여객선도 끊기고 이 산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했습니다.”
윤씨는 이곳에 나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승선표까지 팔았기에 이곳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안다며 60년대 이전에는 노를 젓는 배가 다녔고, 박정희 정권 시작 무렵에는 ‘통통배’가 다녔으며 70년대 후반에 들어서 철부선이 운항됐다고 회고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 막배까지 삼지원과 진도 벽파 간 여객선이 1시간 간격으로 운항됐어요. 배 손님을 싣기 위해 버스가 하루에 20번 정도 왔다 갔다 했고 금호고속의 전신인 광주여객은 버스를 철부선에 싣고 진도로 건너갔습니다.”
윤씨는 “삼지원이 울돌목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물살이 쌔서 밀물 때는 항구 앞에서 왼쪽으로, 썰물 때는 오른쪽으로 배들이 흘러가듯 가다가 해협을 어렵게 건넜다”며 “삼지원은 70~80년대가 전성기였고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광주까지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했기에 무려 5~6시간이 소요됐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청장 이명준)은 우수영 여객터미널에 여객선검문소를 설치해 필요시 해양경찰관을 파견하고 순찰 및 계도활동 등을 통해 해안지역 주민과 여행객의 안전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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