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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해경 아카이브’ 사라지는 항·포구 ㊶신안 하사치도 선착장 상세보기 표 - 제목, 작성자, 등록일, 내용, 첨부파일로 구성
‘서해해경 아카이브’ 사라지는 항·포구 ㊶신안 하사치도 선착장
작성자 조현경 등록일 2022.05.16



천사대교 개통 후 차도선 변화 … 하루 5회 도선 운항

-해수면 높이에 마을 형성, 90세 이상 노인만 10여명… 섬개구리 만세 영화 소재지-
 


사치도(沙雉島)는 신안군 안좌면에 속한 섬으로 안좌도의 북서단 바다 건너에 위치한다. 이 섬의 서해에는 비금도의 수치도가 자리한다. 사치도는 본래 여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뤄졌었으나 간척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현재는 북쪽의 상사치도와 남쪽의 하사치도만이 남았다. 이들 두 섬은 노두에 의해 연결된다.

 

두 섬의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주민들이 사는 곳은 하사치도이며, 상사치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상수원 시설이 들어서 있다.

 

사치도의 지명유래와 관련해 이곳 나이든 사람들은 상사치도에 있었다는 모래언덕을 언급했다.

 

“일제시대(일본강점기)에 100미터도 더 넘는 커다란 모래언덕이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이 모래를 다 파갔다고 우리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자주 말했습니다.”

 

사치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손용남씨(77·사치마을)는 ‘산보다 높은 모래 언덕이 있었기에 섬의 지명에 모래[沙]가 들어간 것’이라며 ‘현재는 모래언덕 대신 해수욕장 같은 모래사장만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치도의 관문인 사치선착장은 하사치도의 북동단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선착장과 안좌도 한운리에 위치한 북지선착장 간에는 하루 5회의 도선이 운항되고 있다. 또한 하루 한차례 비금 ~ 암태 남강 간을 연결하는 차도선도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 차도선은 천사대교가 개통되기 이전에 운항됐던 선박에 비해 실제 주민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시간대라고 한다.

  사치선착장 

김만문씨(73·사치마을)는 ‘40여 년 전에는 대흥상사의 여객선이 목포 앞선창을 출항해 안좌 읍동 등을 들린 다음, 사치도를 거쳐 비금·도초까지 갔다’며 ‘사치에서 이 배를 타면 목포까지는 3시간가량이 소요됐다’고 회고했다.

 

이 섬의 바로 인근 안좌도가 고향이라는 사치치안센터의 노오석 소장(60)은 ‘예전에 객선(목선)이 다닐 때는 ’남대호‘, ’동원호‘ 등의 여객선이 있었으며, 이들 배는 목포 항동 여객선터미널을 출항해 안좌도-팔금-읍동-사치-비금·도초-흑산도까지 운항했고, 당시 흑산도에서 목포 앞선창까지는 6시간가량이 소요됐다’고 기억했다.

 

사치도는 신안의 다른 섬들에 비해 빼어난 자연경관이나 볼거리 등이 많지 않아 외지 방문객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이 섬은 1970년대에 영화의 주된 촬영지가 될 정도로 한때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전교생 60여명의 외딴 섬마을 ‘국민학생(초등학생)’들이 전국 체육대회에서 내로라하는 도시의 학생들을 물리치고 농구에서 준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의 뉴스거리가 돼 청와대의 초청까지 받았고, ‘섬개구리 만세’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명성은 옛말이고 현재는 35가구에 60여명 가량의 주민만이 거주하는 한적한 어(농)촌이 됐다. 그럼에도 사치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섬이 ‘좋다’는 의견을 망설임 없이 피력한다.

 

“얼마 되지 않은 인구에 90세 이상의 장수노인이 10여명에 달합니다. 100세가 된 노인이 직접 산에서 나무를 가져와 장작을 패는 섬마을이 사치도입니다.”

 

이 곳 토박이 유종호씨(65)는 ‘사치도의 경우도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공기 좋고 오염이 안됐다는 자연조건을 지녔고, 여기에 이곳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큰 욕심을 내지 않는 편이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 같은 요인과 함께 ‘무엇보다 사치도는 산이 없을 정도로 거의 평지에 가깝다’며 ‘이처럼 해수면 높이에 마을이 형성돼 해수가 발산하는 음이온 혜택을 마을사람들이 많이 받기에 장수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하사치도의 경우 섬에 야산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지형이 낮으며, 이 때문에 1년에 한번가량 있는 백중사리에는 바닷가의 일부 집들은 해수가 앞마당까지 들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사치도의 식량사정은 야산에 대한 개간과 갯벌 등에 대한 간척이 이른 시기부터 이뤄져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논농사가 많지 않았기에 주식은 주로 보리와 고구마였으며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는 보리나 ‘서숙(조)’ 밥에 쑥이나 해초 등을 더해 먹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보릿고개 철에 풋보리를 쪄서 밥을 해먹거나 이를 갈아서 죽을 쒀 연명하기도 했다.

 

전남을 비롯한 남해안의 일반적인 젓갈문화와는 다르게 사치도에서는 김치에 주로 ‘강다리(황태)젓’을 사용한다고 한다. 강다리는 조기처럼 생겼으나 5cm미만의 크기에 머리만 큰 생선이다.

 

“멸치젓은 맛은 있지만 김치에 넣으면 색상이 검어지고 고춧가루도 더 들어갑니다. 예전에 강다리가 흔했고 뒷맛이 크게 비리지 않아 많이 넣었어요.”

 

안좌도에서 시집왔다는 정명심씨(71·사치마을)는 이런 이유로 ‘김치에 강다리젓, 백새우, 생새우 등을 넣어 김치를 담고 현재까지도 김장을 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고깃배가 와서 물물교환 식으로 강다리를 구입했는데 당시 보리 한말을 주면 반말정도의 강다리를 줬다’고 기억했다.

 

사치도의 경우도 신안의 여러 섬들과 유사하게 잔치 성격의 상·장례를 행하는 ‘밤다리’ 풍속이 비교적 최근까지 유지됐다. 밤새 모닥불을 피우고 이 불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징, 장구, 북 등을 치며 노래 부르고 놀았다고 한다. 이 풍속은 지난 2000년에 마지막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이 풍속에서 마을사람들은 팥죽을 먹었으며, 150근 (1근이 600g) 정도의 돼지를 잡아 수육 등을 만들고, 내장은 큰 가마솥에 갈파래와 함께 끓여 먹었다고 한다. 이 국을 ‘갈파래국’이라고 하며, 마을 사람들은 현재도 1년에 1~2차례 정도는 이 국을 먹는다고 한다.

 

한편, ‘밤다리’ 풍속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유종호씨(65)는 ‘섬 인구가 감소한 것도 이유지만 상조회 및 화장 문화의 발달과 함께 아프면 병원에 가고, 늙으면 거의 요양원에 들어가기에 실제로 섬에서 살다가 작고하는 노인들이 없는 것이 주된 이유’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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